애리조나주립대 헨드릭 베셈바인더(Hendrik Bessembinder) 교수의 2018년 논문 "Do Stocks Outperform Treasury Bills?" 는 주식시장의 구조를 통계적으로 다시 보게 만든 연구다. 이 글은 이 논문이 제시한 숫자들을 정리하고, 그 함의를 포트폴리오 설계로 어떻게 옮길 수 있는지 내 방식대로 요약한 것이다.
퀴즈 하나로 시작
192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에 상장된 주식은 약 26,000개다. 이 중에서 미국 국채보다 높은 수익을 낸 종목은 전체의 몇 퍼센트일까?
- 80%? 주식이니까 당연히 대부분?
- 60%? 절반 이상은 되지 않을까?
- 43%? 절반도 안 된다?
정답은 43%다. 즉 주식의 57%는 미국 국채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른다"는 명제는 지수 차원에서는 맞지만, 개별 종목 차원에서는 절반 이상이 안전자산만도 못했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건 다음 숫자다. 주식시장 전체가 국채 대비 벌어들인 초과 수익의 100%를, 단 4%의 종목이 만들어냈다. 나머지 96%를 합쳐봤자 국채 수익률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 양의 왜도
주식 수익률의 분포를 그려 보면 답이 나온다. 흔히 배우는 정규분포(벨 커브)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길게 꼬리가 늘어진 비대칭 분포 — 양의 왜도(Positive Skew) 다.
이유는 단순하다.
- 주식의 최대 손실은 -100% (투자금 전액 손실)가 하한이다.
- 최대 수익에는 상한이 없다. 10배, 100배, 1,000배도 가능하다.
이 비대칭 때문에 재미있는 현상이 생긴다. 평균 수익률은 양수인데 중앙값은 음수다. 소수의 대박이 평균을 끌어올리지만, 실제 과반의 종목은 돈을 잃는 구조.
비유하면 이렇다. 10명이 있는 방에 제프 베조스가 들어오면 평균 자산은 수십억 달러가 된다. 하지만 중앙값은 거의 그대로다. 주식시장이 정확히 이런 구조다. "평균 수익률"만 보면 시장의 실제 모습을 놓치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숫자 — 37%
베셈바인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2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무작위로 종목을 골라 장기 보유했을 때 시장을 이길 확률을 계산했다.
- 25종목 포트폴리오: 37%
- 100종목 포트폴리오: 43%
종목 수를 아무리 늘려도 50%를 넘지 못한다. 동전 던지기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수의 대박을 놓치면 바로 언더퍼폼이고, 대박은 정의상 드물기 때문이다.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액티브 펀드매니저의 85~90%가 장기적으로 인덱스를 이기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분포 자체가 불리한 것이다. 직업으로 종목을 고르는 사람들도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게임이라는 뜻이다.
S&P 500의 진짜 정체
"S&P 500이 지난 30년간 연 10% 수익을 냈다"는 말은 "500개 종목이 골고루 10%씩 올랐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는 상위 10개 종목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같은 — 이 지수 수익의 상당 부분을 만든다. 하위 200~300개는 거의 기여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다.
"인덱스 펀드가 좋다"는 조언의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상위 4%를 개별 투자자가 직접 골라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인덱스 펀드는 그 4%를 자동으로 포함한다. 비결은 종목 선택 실력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상위 4%를 놓치지 않는 장치다.
한국 시장은 더 극단적이다
베셈바인더의 2023년 글로벌 연구(42개국, 64,000개 종목)를 보면 비미국 시장의 부 집중도는 미국보다 더 심하다. 전 세계 주식시장 부의 100%를 상위 2.4%가 설명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KOSPI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같은 소수 대형주가 지수 수익의 대부분을 견인한다. 코스닥은 변동성이 크고 상폐 비율이 높아 "대부분이 부진하다"는 현상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소형주 몇 개를 골라 장기 보유하는 전략은 통계적으로 보면 지는 게임을 자초하는 구조에 가깝다.
포트폴리오 설계로의 번역
베셈바인더의 결과는 세 가지 실전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코어-새틀라이트 구조
- 코어 70~80%: 시장 전체를 담는 인덱스 ETF(S&P 500, 나스닥100, KOSPI200). 상위 4%를 놓치지 않기 위한 보험.
- 새틀라이트 20~30%: 확신 있는 개별 종목. 대박을 노리되 전체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
이 구조의 핵심은 "상위 4%를 직접 맞출 수 있다"는 과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2. 승자를 달리게 놔둬라 (Let Winners Run)
양의 왜도 분포에서 가장 비용이 큰 실수는 대박 종목을 일찍 파는 것이다.
종목의 57%는 어차피 국채도 못 이긴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나머지 소수 중 하나를 잡았을 때 2배에서 팔아버리면 10배를 놓친다. 피터 린치는 이렇게 말했다.
"평생 성공적인 투자를 하는 데 필요한 건 몇 개의 큰 승자뿐이다. 그 승자들의 수익이 나머지 실패의 손실을 압도할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손절선은 엄격히 유지하되, 익절은 기계적 비율(예: +30%)로 고정하지 않는 쪽이 맞다. 소수의 대박이 다수 실패의 비용을 메꾸는 구조라는 걸 받아들이면, 조기 익절은 가장 비싼 의사결정이 된다.
3. 분산의 최소 기준
25종목 → 37%, 100종목 → 43%. 분산을 늘려도 50%를 넘지 못한다면, 개인이 수작업으로 100종목을 운용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코어를 인덱스로 채운다. 인덱스 하나로 수백~수천 종목에 자동 분산된다.
정리 — 투자 결정에 항상 따라붙는 질문
베셈바인더의 법칙이 실전에 남기는 질문은 간단하다.
"이 포트폴리오에 상위 4%가 포함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종목 선택의 프레임이 달라진다. "이거 오를 것 같다"에서 "이 구조가 상위 4%를 놓치지 않는가"로 바뀐다. 상위 4%를 직접 맞추는 건 실력 문제가 아니라 확률 게임이고, 그 확률을 내 편으로 만드는 건 결국 구조(인덱스 + 선별적 새틀라이트)의 문제다.
주식시장은 공평한 게임이 아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종목만 잘 고르면 된다"는 환상에 빠지고, 인식하면 "어떻게 해야 소수의 승자를 놓치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그 차이가 장기 수익을 가른다.
참고 문헌
- Bessembinder, H. (2018). "Do Stocks Outperform Treasury Bills?"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129(3), 440-457.
- Bessembinder, H. (2023). "Shareholder Wealth Enhancement, 1926 to 2022." SSRN #4448099.
- Bessembinder, H. et al. (2023). "Long-Term Shareholder Returns: 64,000 Global Stocks." Financial Analysts Journal, 79(3).
- SPIVA U.S. Year-End 2024 Scorecard.
- Peter Lynch, One Up on Wall Street (1989).
'주식 투자에 통계학 지식이 필요한 이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 정도 폭락은 모델상 불가능합니다" — 정규분포가 거짓말하는 방식 (0) | 2026.05.07 |
|---|---|
| 테슬라만 기억하고, 4개의 무덤은 잊는다 — 생존자 편향의 함정 (0) | 2026.05.01 |
| 그 종목의 성공 확률은 몇 %입니까? — 기저율 무시의 함정 (0) | 2026.04.24 |
| 3개월 수익률은 동전 던지기다 — 실력과 운을 가르는 t-검정 (0) | 2026.04.17 |